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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읽기

남자의 물건, 그리고 이야기

김정운 교수를 좋아합니다. 그가 심리학자로서 얼마나 명망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도 대중적으로 친근한, 권위를 기꺼이 내던져버릴 수 있는 교수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운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우리의 욕망에 솔직해지고 사회의 틀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사는 방법을 유쾌하게 서술한 책입니다.

 

저는 한 작가에 꽂히면 그의 다른 저작도 다 챙겨서 봅니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은 <노는 만큼 성공한다>였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성공의 기준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갖은 고생을 해서 성공이라고 평가받는 위치에 올라간 인물을 만나도 막상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갖 욕망을 억제해가며 성공을 쟁취했는데 막상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는 시간이 충분해졌는데 그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일과 여가를 잘 조화해가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두 권의 각기 다른 책을 읽었는데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캐릭터와 주제의식이 워낙 뚜렷하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기획하든 비슷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그가 써먹을 만한 소재와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강연과 고정 출연으로 그는 과도하게 소모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의 신작 <남자의 물건>을 펼쳤습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남성이 불행한 이유를 자신만의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스토리를 가진 명사들을 인터뷰 하면서 그것을 대변하는 물건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사실 책의 전반부를 읽으면서 실망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책과 강연, TV 출연에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김정운 교수는 여기까지구나, 이 정도 읽으면 되겠다 하고 책을 접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책을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다시 책을 펼치게 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차범근, 문재인, 조영남 등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물건을 꼭 집어내고 그것에 대해 김정운 교수 특유의 익살스러운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분석을 해 나갑니다. 좋은 인터뷰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범근은 계란 받침대를, 문재인은 바둑판을, 조영남은 뿔테 안경을 각각 그들을 대표하는 물건으로 내놓았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그는 자신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잘 알기에 대부분의 활동을 접고 지금 일본 나라현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돌아왔을 때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