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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읽기

행복의 조건 그리고 박승일

우리는 남과 항상 비교하며

행복과 나는 별개인 것처럼 살며

불만은 늘 꼬리처럼 따라다녀

뭐 하나 제대로 된 만족 없는 삶이란 틀

 

어찌하겠나 이것이 다...

살아가는 모든 이의 인생인 것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행복의 조건

 

(중략)

 

행복의 뒤를 절대 좇지 않아

행복은 나를 찾아 감싸 안아

 

- 드렁큰 타이거, '행복의 조건' 중에서

 

 

'행복의 조건'이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된 것은 북구의 기차 안에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MP3 플레이어가 보편화되었을 때이지만 고지식한 면이 있는 저는 CD플레이어를 고집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를 방문한 김에 그가 갖고 있는 음악 파일을 얻어왔습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저 드렁큰 타이거의 '행복의 조건'입니다. 가사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는 이 노래는 사실 루게릭병에 걸린 연세대학교 출신 농구선수이자 현대 모비스의 최연소 농구코치로 임용된 박승일 님을 위한 곡입니다. KBS스페셜에서 박승일 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그가 미국유학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드렁큰 타이거의 곡이었다고 합니다. 드렁큰 타이거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를 위한 랩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 '행복의 조건'의 부제는 희망승일입니다. 루게릭병에 걸린 농구코치 박승일 님을 위한 곡이기도 하지요.

 

농구선수로서 박승일은 뚜렷하게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명문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스타팅 멤버에 그가 끼기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식스맨으로서 꾸준히 경기에 나서려고 했지만 프로 리그에 진출하고 나서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는 선수보다는 코치로 자신의 커리어를 일찍 쌓으려고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빨리 선수 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브리검영 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돌아온 그에게 '최연소 프로농구 코치'라는 타이틀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그에게는 지도자로서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코치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자신의 몸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루게릭병, 누구보다 긍정적이었고 활달했던 그는 병상에서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게 된 것입니다.

 

 

루게릭병 투병 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박승일 님을 보며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눈동자의 변화를 감지하는 장치를 이용해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쓰기도 하고 자신과 같이 루게릭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연대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그를 도우려는 후원자가 나타나고 그가 만든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이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응원도 합니다. 루게릭병이라는 병마에 굴복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그를 보며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제 소개한 우리나라 직장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결코 아닐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뚜렷한 내면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외부 요인이 자신을 괴롭혀도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무엇을 할 때 기쁜지, 무엇을 하려고 사는지를 늘 놓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끊임없이 자신이 사회의 세속적 기준에 동화되고 있는지 채찍질 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요? 그들의 인생 여정에서 우리 삶의 좌표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의 조건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 '행복의 조건'과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을 만났습니다. 조지 베일런트라는 정신과 전문의가 하버드 졸업생 집단을 비롯한 몇 개 집단의 구성원 전체를 전수조사 식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그들이 졸업을 하고 어떻게 살다가 죽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 삶의 행복을 규정한 조건들이 무엇이었는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추려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면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 50세 때의 콜레스테롤 수치, 사회에 순응하는 능력, 어릴 적 성격 등은 장기적인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떤가요? 돈, 큰 집, 빠른 차, 배우자, 명성, 사회적 지위... 놀랍게도 그런 것들은 행복을 결정하는 조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돈은 일정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 되면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는군요. 박승일 님을 보면서, 행복의 조건을 들으면서, 행복의 조건을 읽으면서 가치관을 다듬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잠깐만 까딱하다가는 얇은 삶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세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