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포스트를 올립니다. e-북이든 실물 책이든 꾸준히 읽고는 있는데 영화도 많이 보고 강연도 자주 들으러 다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평이 적었습니다.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김두식 교수의 책을 가능한 범위에서 다 빌려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발간일 역순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버스를 타고 졸면서 완독한 책은 <불멸의 신성가족>입니다. 검사 출신 저자가 내부고발자를 자처한 이 책의 부제는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 사는 법'입니다. 저자는 면담이라는 질적조사 방법을 통해 법조계 내외부의 목소리를 비교적 담담하게 서술해나갑니다. 법치국가인 우리 사회에서 법조계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대한 낯설음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시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기득권입니다. 기득권을 갖기 위해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은 도서관에서 법학도서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누리려 합니다. 그들이 누리는 권리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사법시험을 합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숨에 기득권층이 되어버리는 구조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고 진입장벽을 낮춘다고 해서 단숨에 그들이 가진 특권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이런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 법조계 내부의 자정 노력과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는 깨어있는 시민의 작은 시도를 요구합니다. 그런 결론밖에 낼 수 없는 구조적 한계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말이죠.
대학 시절 저는 학교에 있는 법학도서관을 자주 이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새 건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새집 냄새가 심하다며 그 곳을 싫어하던 친구도 있었지만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실 법학도서관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들이 유치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설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곳에서 공부하는 이들은 법과대학생이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그 중 다수가 사법시험 준비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매우 살벌한 공기가 느껴졌고 종종 노트북으로 문서 작업을 잠깐 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조용히 해달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아마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절박함일 것입니다. 그런 절박함에 시달리던 이들 중 일부는 지금쯤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법학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저는 딴 짓을 많이 했습니다. 전공인 사회학 공부와 국어, 영어 등 취업 준비를 등한시한 채 이런저런 잡식성 독서를 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마 너희들은 법학책에 파묻혀 세상의 단면만을 보고 있지만 나는 이 시간에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있다는 유치한 오기의 발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저는 법학도서관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특권의식을 가졌습니다. 두꺼운 법학책이 아닌 사회과학 도서와 인문학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의 특별한 권리 말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오는 특권의식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할 때 발현됩니다. 법조인도 사회에서 단순한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식될 때, 신성가족 내부에 있는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할 때, 특권의식은 비난받아서도 안 되며 비난 받을 대상도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가 더이상 기득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기득권은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내려놓아야 할 무엇입니다.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햇볕은 나그네를 움직이게 했듯이 말입니다.
저와 같은 공간에서 두꺼운 책에 파묻혀 제게 경외심마저 느끼게 했던 저의 동기, 선후배들이 좋은 법조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며 약자의 아픔에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멸의 신성가족 내부에 안주하며 기득권층이 되어가기 보다는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 견고한 세계에 작은 틈이라도 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살다가게 마련이며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세상은 딱 그만큼일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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