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가 뜸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여놓고는 자꾸만 타성에 젖으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름이라 더워서 그런가 하고 핑계거리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며칠동안 폭우가 오더니 금세 날도 선선해졌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난 주말에는 갑작스레 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거라 무작정 여행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작정하지 않고 갔으니까 그야말로 무(無)작정 여행이네요. 무작정 여행의 목적지는 광양이었습니다. 제가 즐기고 있는 고급(?) 취미인 1인 중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인 미디어를 자처하면서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Afreeca 채널을 이용해 축구 중계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중계하지 않는 K리그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노트북과 와이브로, 웹캠, 마이크를 이용해 중계합니다. 지난 서울과 경남의 26라운드 경기는 실시간 시청자가 1,000명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런던올림픽 기간이라 기성 방송사에서 K리그 중계를 외면했고 저는 그 틈을 타서 올림픽 특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계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노트북 컴퓨터, 와이브로 단말기(에그), 웹캠, 마이크만 있으면 누구나 간단하게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축구 중계같은 경우에는 늘 그 놈(!)의 화질이 문제이지만요. 다음 번에는 1인 중계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서울과 경남 전만큼은 아니었지만 27라운드 수원과 상주의 경기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여세를 몰아서 28라운드도 중계가 없는 경기를 직접 방송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그 경기가 전라남도 광양에서 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K리그 28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의 홈은 광양 축구전용구장이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광양을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회사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갔기 때문에 광양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고민하기를 한 시간 여, 해보고 후회하는 일보다 안 해보고 후회하는 일이 많다는 평범한 진리에 의존한 채 전격적으로 짐을 꾸립니다. 광양까지는 버스로 4시간이 걸리고 버스는 동서울터미널과 남부터미널 두 군데에서 출발한다는 기본적인 정보만 챙긴 채 말이지요. 오후 7시에 열리는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남부터미널에서 1:30 차를 예매했습니다. 짐을 챙기기 시작한 건 12시 반이었고요. 이 자리를 빌려 세안만 대충하고 떠나야 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가까스로 남부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13:23이었습니다. 여유를 부리며 버거킹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든 후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남부터미널을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광양에는 버스터미널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광양, 다른 하나는 중마(동광양)입니다. 중마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대부분 광양에 먼저 들르기 때문에 버스를 잘못 탈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예상 소요시간은 4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중마터미널에 내려 광양 축구전용구장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했습니다. 스마트폰은 이럴 때 참 편리합니다. 버스를 탈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고 주변 경치도 구경할 겸 걷기 시작했습니다. 중마터미널에서 광양 전용구장까지 거리는 대략 5km입니다. 스마트폰의 GPS 기능을 켜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발걸음을 뗐습니다.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크게 어려운 길은 아니라서 한 시간만에 광양 구장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금호대교를 건넜는데 강바람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금호대교에서 바라본 광양 풍경입니다. 공업도시 광양답게 사진 왼편에 제철소가 보입니다. 사진 오른쪽 지역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더라고요. 대한민국 여느 곳처럼 말이지요.
부푼 기대를 안고 광양 구장에 도착해 방송 장비를 세팅한 후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수백 명을 거뜬히 넘겼던 우기TV(제 중계방송국 이름입니다) 시청자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방송장비에 문제가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주변을 살피다 경쟁 방송국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원정팀인 포항 스틸러스 구단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국인 스틸러스TV가 그 날 경기를 Afreeca 채널을 통해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웹캠을 사용하는 저와 나름의 방송 장비를 갖춘 그들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았습니다. 콘텐츠는 자신이 있었기에 편파 중계로 콘셉트를 바꿔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방송 화질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힘들었습니다. 결국 후반전이 시작되고 저는 과감히 방송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광양 전용구장의 홈 서포터즈 석인 N석으로 이동했습니다. 응원석에서 경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광양 전용구장은 1만 5천명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구장이지만 전용구장답게 그 어느 곳보다 가까이서 축구를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경기 중간중간 선수 이름을 부르면 그 소리가 잔디밭 안까지 다 들립니다. 욕설까지도요. 실제로 'OO야, 똑바로 안 해'와 같은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줌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처럼 관중석과 필드가 가까운 전용구장은 사진 속의 광양 구장 말고도 포항 스틸야드, 인천 숭의아레나 정도가 있습니다. 관중 1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꽤 규모가 큰 구장 중에서 말이지요.
경기는 전남이 리드하다가 역전을 당해 4:3로 포항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막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지, 하룻밤을 묵을지 고민했습니다. 무리를 해서 막차를 탈 수도 있었지만 1인 중계에서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한 터라 본전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 근처로 돌아와 숙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찜질방을 가고 싶었으나 밤이 늦었기에 그 곳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이미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하릴 없이 여관을 찾아갔는데 여수엑스포 때문인지 숙박비가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5만원이 보통이었고 조금 싼 데가 4만원이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굿스테이 숙소로 지정한 알프스 모텔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한 후 에누리를 해달라고 부탁해 3만원으로 깎았습니다. 경기장에서 버스를 탔지만 내릴 곳을 잘못 찾아 결국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습니다. 땀에 절은 몸을 재빨리 씻고 밖으로 나가 먹을 거리를 좀 사왔습니다. 저녁도 거른 터라 배가 무척 고픈 상태였지요.
광양에서 밤참으로 먹은 순대와 맥주입니다. 찰순대, 아바이순대, 카레순대 등이 들어있는 모둠순대가 6,000원입니다. 쿠폰까지 넣어주셨는데 다시 가서 먹고 싶은 마음이 사진만 봐도 절로 들 정도로 맛있습니다. 피곤한 하루에 맥주 한 잔이 빠질 수 없죠!
포스팅을 하려고 쓰다보니 글 하나로는 다 담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1일차 일정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이틀째 이야기는 내일 들려드리겠습니다. 보너스로 이 날 하루 쓴 돈을 정리해 드립니다.^^
<무작정 여행 1일차 경비>
서울 - 동광양 우등버스 : 28,100원
버거킹 아이스 아메리카노 : 1,000원
탄천휴게소 야채 토스트 : 2,000원
전남구장 - 중마동 버스비 : 1,100원
알프스 모텔 숙박비 : 30,000원
밤참으로 산 모둠순대 : 6,000원
편의점에서 산 맥주 + 생수 : 3,900원
합계 : 72,100원
중마 터미널에서 내린 후 광양 전용구장으로 걸어가는 도중 찍은 셀카입니다. 이렇게 의기양양했던 제가 다음 날 어떻게 변해가는지 내일 포스팅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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