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생생한 실례로 'I am sorry letter' 쓰는 법을 강의합니다. 못난 남자친구 우기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J에게 사과 편지를 쓰는 법입니다. 상황은 뉴밸런스 운동화를 사는 과정에서 토라진 우기가 애인 J에게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고 사과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진심을 담은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읽어주세요!
왼쪽이 J, 오른쪽이 우기입니다. 아래 편지는 가상 상황으로 절대로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랍니다. 절대로요.^^
사랑하는 그대, J에게.
메일로 진지한 얘기를 하는 건 처음이네. 아침에 버스 안이라 전화 못 받았어. 목소리 듣고 얘기하고 싶지만 글로 쓰면서 마음이 정리될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이야. 우선 어제 일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사과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것도 있고 그래. 사실 어제 운동화 살 생각은 없었는데 J가 제안해서 구경 간 거고 J 건 사주고 싶었어. 이건 사실이야.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쓰는 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한데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한테까지 그러고 싶진 않아. 그냥 내 마음이 그래. J한테도 그렇고, 가족한테도 그렇고. 근데 신용카드 써가면서까지 내 신발 사고 싶지는 않았어. 그냥 내 소비생활이고 거창하게 얘기하면 소비철학(?)이고 그래. 다만 J가 제안해서 간 건데, 예전에 했던 말도 있고, 좀 섭섭한 마음이 컸던 건 사실이야. 그걸 직접 내 입으로 얘기하고도 좀 민망했고... 괜히 삐친 척으로 나타난 거지. 이 부분이 미숙했다고 생각해.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으면 일이 덜 커졌을 텐데... 이건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게. J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그걸 애써 들어보려고 하지 못했으니까. 먼저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이미 마음은 토라졌고 얼굴은 벌개지고 몸에는 자꾸 열이 나고. 나쁜 기운이 몸에 퍼지더라고. 거기서 얘기를 더 했다가는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말을 줄였어. 애써 마인드컨트롤 한 거지. 많이 부족했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줬으면 해. 맘에 없는 말까지도 나올까봐 조심했어. 더 세련되게 대응했어야 하는데... 천성이 부족한 건지 부끄럽고 그래. 내 입장에서만 얘기하면, 카드 들고가서 결제 취소하고 한 건 너무 상처가 되었어. 어제같은 경우는 그냥 사정이 듣고 싶었던 거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J도 나름의 감정이 있었을 거야. 근데 그걸 정말로 잘 모르겠어. 그 때 어떤 느낌이 든 건지 설명해줄래? 거기서 내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거고... 그걸 알고 내가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사실 난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어. 그냥 내가 원래 사려고 했던 신발 사오면 멋쩍게 넘어가고 나중에 사정도 설명하고 그러고 싶었는데, J가 결제 취소하고 와서 '이제 기분 나빠하지 마' 이렇게 얘기할 때, 정말 어쩔 줄 모르겠더라... 난 돈 몇 만원 때문에 그런 게 아닌데, 사정이 듣고 싶은 건데... 너무 수치스러웠어. 기분은 더욱더 안 좋아지고 자리를 잠시 떠야겠더라고... 그래서 조카 내려놓고 가서 잠시 걷다 왔어. 심호흡하면서... 어제는 애기들도 있고 누나, 매형도 있어서 상황이 좀 악화된 면이 있지만 내가 기본적으로 미숙한 거지, 뭐. 생각할 수록 부끄럽고 그래. 미안해. 다만 J 입장에서 어제 일을 듣고 싶고, 기분을 알고 싶어.
지하철역 내려서도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 여기서 풀고 가야 하는데 괜히 얘기하다가 언성만 높아질 것 같고. 그냥 무작정 내려갔던 거야. 잡아주길 바라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자 있다 보니까 조금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하는게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아서 마이피플로 메시지 보냈는데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았어. 근데 어제 그 당시 난 진심을 담아서 대화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J가 했던 말이 더 가슴이 콕 박히더라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부정할 수는 없더라고. 늘 넉넉한 모습 보여주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 다만 그동안 내가 보아온 J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했어.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 지하철 오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해보면서 나 자신이 밉기도 하고, J가 미워지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들더라. 내가 좀 J를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그게 제일 미안했어.
집에 와서도 샤워하고 열 좀 식힌 후에 이렇게 생각해보고, 저렇게 생각해보고 생각하면 할 수록 내가 미워지는 거야. 아, 잘해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왜 까다롭게 굴었을까... 미안해지더라. 그래서 자괴감이 심해지고, 사과하려고 전화한거야. 전화 안 받으니까 마음이 더 무거워지더라. 난 J에게 좋은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더욱 괴로웠어. 그래서 고심하다 고심하다 밤에 문자를 보낸거야. 보내고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새벽에 잠 뒤척이면서 여러번 깨서 전화기 확인하고... 복잡한 감정이었어.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영어하는데 그 선생이 그러더라. 잘잘못을 떠나서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안볼 사이 아니지 않냐고. 남자가 먼저 그래야 한다고. 미국인이 그렇게 얘기하는 거 들으니까 안 되겠더라. 확신이 들었어. 그래서 끝나고 바로 전화한거야.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가 아님을 알고 J가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경솔했던 거 사과할게. 딴에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고 하지만 오늘 아침 감정은 어제 밤과는 영 다르네. 상견례 얘기도 오가고, 결혼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망스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내가 그대에게 어떤 사람일지 지금 이 순간 자신감은 바닥이지만 하나밖에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 못난 애인 사고뭉치 우기를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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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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