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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읽기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유시민

유시민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직업으로의 정치를 그만두고 자신의 본업인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짧은 트윗을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자유인을 자처하는 유시민다웠습니다. 그리고 유시민은 자서전 비슷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 출간된 건 아니고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판매 중입니다. 혹시나 해서 점심시간에 반디앤루니스에 들렀습니다. 직원이 매장이 깔리려면 좀 있어야 하는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 한 권 있다며 급하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신간이라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서점에서 바로 찾는 북셀프 서비스를 이용해 정가의 10% 싸게 사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화제가 되는 책을 미리 입수한 기쁨과 환희에 오랜만에 '날마다 읽기'에 포스팅을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증샷입니다.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을 듣는데 황정은 작가가 그러더군요. 자신은 소설집 프로필에 얼굴 사진 대신 손을 싣고 싶다고요. 편집자에게 늘 퇴짜를 맞았답니다. 인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저 말이 생각나서 손을 같이 찍었습니다. 거무튀튀한 손에 뭉툭한 엄지손가락, 제 손 맞습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프롤로그 '나답게 살기'와 1장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독했습니다. 책에서 유시민은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도 못했다(p.27)"고 고백합니다. 뚜렷한 목표도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학생운동을 했고, 어둠의 시대에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목도하며 법학 대신 경제학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근본적이지는 않았다고 서술합니다. 정치에 뛰어든 것 역시 비본원적인 선택에 불과하며 다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반드시 정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지점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났습니다. 그 역시 생전 인터뷰에서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을 다시 결정할 수 있다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크라잉넛을 사례로 듭니다. 자신은 방향과 목표가 있는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흘러왔지만 크랑잉넛은 그 대척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크라잉넛이 2010년에 발간한 책 제목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유시민과 크라잉넛, 언뜻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사진 출처: 크라잉넛 웹사이트)

 

 

유시민은 또한 '어떻게 살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한 걸음씩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p.45)"는 것이죠. 살아있는 모든 순간 우리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염두에 두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라는 임상심리학자의 관찰 결과를 빌려와 삶은 결국 사랑, 일, 놀이의 '위대한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어떻게 놀고, 일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유시민은 마틴 셀리그만의 견해를 보완해, 연대(solidarity)라는 영역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가운데 삶은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자신은 자연인으로 돌아가 마음껏 연대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소박한 욕망을 털어놓습니다.

 

책을 읽으며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위 사진은 유시민이 자신의 삶에서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선택하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를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이지요. 그 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대학생 때 유시민의 빽바지 논쟁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3년 보궐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첫 국회등원 날, 캐주얼 정장을 입고 왔습니다. 하지만 신성한 국회에서 양복 정장 말고 다른 복장을 생각해보지 못한 일부 국회의원은 대놓고 불쾌함을 표현하며 퇴장해버렸습니다. 약 10년 전이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음날 정장을 입고 나와 의원 선서를 한 그는 이후 개량한복을 입고 출근하는 등 일상에서 다름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유시민 스스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뒤늦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순간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늘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 성향에 동의하든 않든, 이런 직업 정치인을 한 명 더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포스팅을 하려고 스마트폰 폴더를 뒤지다가 문득 작년에 찍은 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유시민은 책날개에서 "대학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읽은 책으로 말하면 역사학도나 문학도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신을 정의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방향을 찾고 목표를 탐색하고 싶다면 그 힌트는 문학에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책 읽고 포스팅도 많이 해야겠습니다!

 

 

끝으로 그가 국회 등원을 하며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하며 오랜만에 올린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다양성, 다원주의. 그의 편지에는 이 가치가 녹아 있습니다.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렇습니다.

 

 

[선서에 부쳐 드리는 말씀]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좋습니다

 

존경하는 박관용 국회의장님과 선배의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양시 덕양갑 유권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도 인사드립니다. 개혁당 유시민 의원입니다. 오늘 제 옷차림 어떻습니까. 일부러 이렇게 입고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국회에 나올 때 지금 같은 평상복을 자주 입으려고 합니다. 혼자만 튀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넥타이 매는 게 귀찮아서도 아닙니다. 이제 국회는 제 일터가 됐고, 저는 일하기 편한 옷을 입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똑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습니다. 제가 가진 생각과 행동방식, 저의 견해와 문화양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의 것도 이해하고 존중해 주십시오.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과 관용'


이것이 이제 막 국회에 첫 발을 내딛은 제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서로 관용할 수 없는 것은 단 하나, 자기와 다른 것을 말살하려는 '불관용'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정활동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불관용과 독선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과 의원님들 지켜봐 주십시오. 격려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3년 4월 29일

새내기 국회의원 유시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