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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읽기

카모메 식당의 우리들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사이버도서관에서 책사냥(!)을 하던 중,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문직 여성이 좋아하는 음식과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고 그냥 넘겼습니다. 하지만 책의 부제인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선 여자들의 속깊은 이야기'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 역시 지금이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이기에 여성의 이야기라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 치열한 고민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인 황희연 씨를 포함해서 이 책에는 총 10명의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당차게 전합니다. 마치 느즈막한 저녁에 커피 또는 홍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직업을 바꾸면서 자신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부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우연히 선택한 또는 치밀하게 준비한 직업이 평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는 그들의 고백은 제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세속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이 책 주인공들의 선택은 의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엇을 했을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오늘자 경향신문에는 강신주 철학박사의 <지금 우린 염려사회에 살고 있다>칼럼이 실렸습니다. 이 칼럼을 읽으며 든 생각이 <카모메 식당의 여자들>의 주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카모메 식당의 이야기꾼들은 자신의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는 대신 현재의 삶에서 무엇을 할 때 자신이 행복한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과 직업이 상충된다면 그 직업을 버리는 걸 감수하고 새로운 길을 떠났습니다. 물론 판단이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관심과 현재의 직업을 유지하며 병행하는 실험을 한 다음, 판단이 섰을 때 과감하게 결정했습니다.

 

책의 주인공들 중 많은 숫자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판단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아가던 자신의 하루하루에 쉼표를 찍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발견한 새로운 삶의 방식은 쉼표를 마침표로 바꿀 수 있는 동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근거지로 돌아왔을 때 과감하게 문단 바꾸기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글을 휘적휘적 써내려 갑니다. 정형화된 글쓰기가 안정감을 주었다면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는 도전과 웃음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비유로 글쓰기를 들었지만 실제로도 제 글쓰기의 틀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쓰고 있는 오늘의 포스트와 지난 주에 썼던 포스트를 봐도 알 수 있지요. 어쩌면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알량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해서 끊임없이 그들의 삶을 동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내면의 방황, 정신적 혼란은 제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자기 삶의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보이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자리 잡고 있든 이야기가 없는 삶은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오늘 저는 제 삶의 콘텐트를 얼마나 만들었을까요? 카모메 식당에 들러서 기네스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 콘텐트를 갖고 있을까요?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삶을 허무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남은 오늘도 저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려 합니다. 퇴근 후 도서관에 가서 김두식 교수와 양소희 작가의 책을 몽땅 대출할 예정이고 주말에 고향집에 가서 가져온 학창시절의 책과 편지를 훑어보면서 지난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려 합니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에서 뛰놀고 있는 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그 곳에 살고 있을 어린 시절의 나를 데리고 카모메 식당에 가보려 합니다. 카모메 식당의 남자 둘이 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