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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쓰기

쇼미더머니,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고백하자면 저는 힙합돌이입니다. 힙합이 좋은 이유는 세상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사회에 딴죽을 걸기도 하며 비판적인 의식을 함유하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힙합이 내포하고 있는 껄렁껄렁함이 좋습니다. 가끔씩 이유없이 세상에 딴죽을 걸고 싶으면 랩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흐느적흐느적 몸을 흔듭니다. 말도 안 되는 프리스타일 랩을 지껄이기도 하지요. 대부분 자의식 과잉이거나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욕설입니다.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에 빠져든 것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패닉의 광팬이었던 저는 김진표가 하던 음악 비스무레한 것이 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조PD가 나왔고 드렁큰 타이거가 나왔으며 허니 패밀리라는 그룹도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999 대한민국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힙합이 대중화되어 간다고 생각이 들 때, 언더그라운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래의 마니아들이 힙합을 하기 위해 홍대의 마스터플랜이라는 클럽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음반을 내면서 하나둘 인지도를 쌓아갔습니다. 주석, 가리온, 디제이렉스 등이 그 중심이었지요. 지방에 살면서 마스터플랜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제가 떠오릅니다. 그 곳에는 진짜 무언가(Da Real)가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니까요.

 

막상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힙합보다 재밌는 것이 주변에 너무나 많았습니다.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힙합은 더 이상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홍대의 클럽은 라이브 랩을 보여주는 무대 위주의 공간에서 부비부비라고 알려진 클러빙을 하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주도권이 넘어간 것이죠. 실제로 마스터플랜이라는 클럽은 없어졌고 그 곳에서 주기적으로 공연을 하던 래퍼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며 음악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래퍼들은 음악을 관두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시장은 힘들었고 힙합이 보여주었던 대안 문화나 저항 정신만으로 주류에 포섭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미디어는 힙합을 다시 무대로 끌어올렸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이 보증된 오디션 포맷에 나는 가수다 컨셉을 적절히 버무린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이죠. 1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힙합의 큰 형님이 된 가리온, 언더와 오버그라운드를 넘나들며 독특한 위치에서 포지셔닝 한 주석을 비롯해 조PD를 디쓰해 큰 관심을 받았던 버벌진트, 호불호가 갈리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MC스나이퍼, 이하늘 동생이 만든 그룹으로 널리 알려진 45RPM, 혀를 심하게 꼬지만 그것이 나름의 매력이 되어버린 더블K, 허니패밀리 객원래퍼 출신의 브아걸 미료, 북치기 박치기라는 광고 하나로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지만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후니훈까지...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쇼미더머니를 보며 반항심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힙합돌이였던 저를 추억하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재밌는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1998년 12월, KBS 1TV 현장르포 제3지대는 홍대와 신촌 위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제목은 드렁큰 타이거의 1집 노래 제목이기도 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였죠. (링크를 클릭하시면 DJ렉스 홈페이지에서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상에는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힙합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한 공학도  MC메타와 한강 둔치에서 말도 안되는 프리스타일 연습을 하는 이마에 여드름 가득한 주석도 나옵니다. 프로그램 말미에 MC메타는 거리에 모인 대중들에게 말합니다.

 

"힙합에는 거품이 많아요. 너무 포장되어 있고요. 껍질이 너무 많아요. 힙합은 단 하나입니다. 트루(True)예요. 트루, 트루쓰(Truth). 진실! 아무리 기지바지(양복바지)를 입고 걸어가더라도 자기 삶에 대해서 자신있고 진실되다면 그 사람은 힙합적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20대 후반의 대학원생이던 MC 메타가 40대 초반의 큰 형님 래퍼가 되어가는 동안, 저는 기지바지를 입고 출퇴근 하는 20대 후반의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얘기했듯이 제가 스스로의 삶에 자신이 있고 진실된 삶을 영유한다면 저는 영원한 힙합돌이가 될 것입니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힙합바지를 입지 않았어도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집에 돌아가면서 분노의 프리스타일 랩이나 해야겠습니다. ^^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지금 랩을 해~ 지나가는 사람 듣든 말든 상관 안 해~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 그 속에 중심을 잡기는 정말 힘드네~ ♪♬"

 

 

대학 1학년 때 학교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MC메타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힙합을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0대가 되어서도, 60대가 되어서도 가리온이 힙합 음악을 계속하고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진은 엠넷 쇼미더머니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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