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서 근무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대형서점을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점심 먹고 들러서 요새는 무슨 책이 잘 팔리지,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지 살펴보는 게 참 재밌습니다. 지적 유희를 가장한 일종의 관음증인 것이지요. 내가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픈 욕망의 발현일 수도 있겠고요. 스님들의 책이 잘 팔리고, 청춘과 희망과 성공을 노래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지만 그 중에서 특히 젊은 세대가 느끼는 고통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 분석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우선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입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발견한 또 한 가지 현상은 신간 중에 화두를 던지는 질문형 제목이 많다는 것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의 최고 인기 강의라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이털남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 시대 대표 수필가인 장영희 교수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까지... 많은 책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자와 독자의 경계선이 점점 옅어지면서 저자의 지식과 노하우를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소통하면서 답을 찾아보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진리로 알고 살아왔던 많은 사실들이 무너지면서 정답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어떤 방법론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청춘 뿐 아니라 더 이상 물리적으로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힘들고 혼란스럽다는 것이겠지요. 점점 팍팍해져 가는 세태상이 알게 모르게 책 제목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방황하고 있는 서른 즈음에 강연 하나를 들으러 갔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고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주관과 철학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인생 선배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은 파업 중인 MBC 노조의 부위원장이기도 한 김민식 PD입니다.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를 들으면서입니다.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는 블로그 활동도 열심이었습니다. 무료하던 20대 후반의 어느 주말, 그의 블로그 포스트를 역순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어나갔습니다. 그는 또래의 전형과는 다른 삶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고 그것은 제가 지향하는 바와 많은 부분이 일치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즐겁게 삶을 살고 있었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누구보다 즐겁게 일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언론사 파업이 보여줬던 강경한 모습과 살벌한 구호를 대체하는 재밌는 콘텐츠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하루하루를 즐기는 모습이었고, 어제 강연에서는 'MBC 파업의 속 이야기'를 가장해 '즐겁게 사는 법'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강연을 들으면서 제가 노트에 적은 한 마디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의성이란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이다.' 사실 이는 <욕망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교수의 형인 김대식 교수가 한 말이기도 합니다. 강연을 듣는 내내 김민식 PD는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저 역시 창의적인 삶을 꿈꿉니다. 아니, 꿈꾸기 보다는 창의적으로 살고 싶습니다. 아니, 희망하기 보다는 창의적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삶의 순간순간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그리고 그 용기를 선택으로 옮기는 것! 이것이 제가 어제 강연을 듣고 얻은 교훈입니다. ^^
강연이 끝나고 김민식 PD님께 책 선물을 한 권 했습니다. 사진도 한 장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응해 주셨습니다. 사실 옆에 애인도 있었는데 사진이 잘 안 나왔다고 빼달라고 해서 급편집을 했습니다. (다만 메인 페이지에는 임시저장한 사진으로 뜨네요. 이건 제가 어찌할 방법이...) 김 PD님은 역시 사진에서도 유쾌하게 사시는 모습이 드러나는군요. 김 PD님과 저는 같은 남방계형입니다. 전생에 먼 친척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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