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의 주인공 로드리게즈의 모습입니다. 그는 포스터에서 보듯이 뮤지션으로서, 일용직 노동자로서 자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거의 매주 영화를 한 편씩 보니 한 주만 건너뛰어도 좀이 쑤실 정도입니다. 주로 소외된 영화를 찾아서 보려고 합니다.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이나 나올 정도로 영화계는 풍년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실제로 소수(?) 영화를 보려면 적잖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몇 안 되는 개봉관을 찾아가야 하고 몇 안 되는 상영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며칠 전 포스팅한 것처럼, 영화판도 승자독식이 본격화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도둑들이나 광해같이 철저한 기획을 바탕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가 다 가져가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Winner takes it all'입니다.
영화 보기의 어려움은 그만 털어놓고 이번 영화 얘기를 시작합니다. 제목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 Man)'을 봤습니다. 영화 제목만 보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지나쳤는데 김민식PD의 블로그에서 영화 리뷰를 읽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이 스웨덴 사람인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여담이지만 어제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한 잔 하다가 스웨덴 비즈니스맨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연찮게 햄버거 사는 것을 돕다가 시작된 대화였습니다. 서울에는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왔고 13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스톡홀름에 살고 있고요. 저 역시 스톡홀름과 웁살라를 여행한 적이 있어서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스웨덴 사람과 부쩍 가까워진 기분으로 스웨덴 사람이 만든 영화를 봤습니다.
서칭 포 슈가맨은 로드리게즈라는 미국인 뮤지션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히스패닉 계인 그는 미국 음악 시장에서 2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봅니다. 제작자는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대중은 철저히 외면한 것이지요. 그는 음악을 업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삶을 놓아버리지는 않습니다. 노가다 판에서 막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공사장에 턱시도를 입고 출근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미국에서 실패한 뮤지션이자 일용직 노동자인 그가 반대편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능가하는 슈퍼스타였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접합니다. 그리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날아가서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그 곳에는 2만여명의 남아공 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마법같은 이야기는 남아공의 지하 음반 시장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된 로드리게즈의 음반이 50만장이나 팔리면서 남아공 대중에게는 이미 친숙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로드리게즈가 자살한 줄 알고 있던 남아공 팬들은 그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물론 그 충격은 콘서트장에서 환희로 바뀌죠. 하지만 로드리게즈는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종종 남아공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인기란 것이 결국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노가다꾼으로 수십년간 살아오면서 체득한 것이지요. 그는 인기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면서 말이지요.
영화를 보고 나서 칼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요즘 신문을 꼼꼼히 봐서 그런지 하루에 하나씩은 기억에 남는 칼럼을 발견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칼럼은 경향신문 오늘의 사색 코너에 실린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라는 책 소개입니다. 1세대 문학평론가인 김현 님이 쓴 책인데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글귀가 있어서 따옵니다.
"우리의 삶에 두께가 없게 느껴지는 것은 합리주의와 그것의 물질적인 측면인 기술문명이 인간은 두꺼운 존재라는 것을 잊고 즐거움을 사람의 삶에서 자꾸 떼어내기 때문이다. 걸어다니는 즐거움은 도시의 크기에 압도되어 거의 사라졌으며, 빈둥거리며 게으르게 세계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인위적인 삶의 리듬에 밀려 없어져 가고 있다. 게으름은 이제 악덕이 되어 가고 있다. 또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감정의 낭비로 여겨지고 있다.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과시적인 소비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비싼 집에서 남에게 돋보이기 위해서만 물건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즐거움! 그 즐거움은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즐거움이라 할 수 없다. 거기에는 지나침이라는 보기 흉한 요소가 들어 있다. 즐거움에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성이 있어야 한다. 그 진성은 자기 마음의 여러 결의 소리에 한껏 귀를 크게 열고 기울이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며, 합리주의자들은 즐겨 피해 가려 한다는 것이다."
- 김현, <두꺼운 삶과 얇은 삶> 중에서
서칭 포 슈가맨을 보면서 김현 님의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을 떠올렸습니다. 로드리게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두꺼운 삶을 선택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얇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음에도 두꺼운 삶을 유지합니다. 오랜 경험으로 자신의 삶 자체를 온전히 소화해내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지요. 얇은 삶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세상입니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칼럼을 읽으면서 두꺼운 삶을 살아내자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영원한 것은, 온전한 것은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떳떳한 삶일 테니까요.
p.s.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제시한 '삶의 질'에 보면 중산층의 기준이 나옵니다. 다음과 같다는군요.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두꺼운 삶을 살려는 분을 위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두꺼운 삶과 얇은 삶. 무슨 삶을 선택할지는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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